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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자리 / 나희덕 본문

[ Mon Hobby ]/Poem

기억의 자리 / 나희덕

JIHOON SON 2017. 9. 22. 16:01

아쉬움은 늘 한 발 늦게 오는지

대합실 기둥 뒤에 남겨진 배웅이 아프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먼 산을 보고 있다

먼저 내밀지 못하는 안녕이란 얼마나 모진 것이냐

누구도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어쩌면 쉽게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

기차가 왔던 길 만큼을 되돌아 떠난다

딱,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기다림은 다시 자랄 것이다

그리운 것일수록 간격을 두면 넘치지 않는다고

침목과 침목 사이에 두근거림을 묶어둔다

햇살은 덤불 속으로 숨어들고

레일을 따라 눈발이 빗겨들고 

이 지상의 모든 서글픈 만남들이

그 이름을 캄캄하게 안아가야 하는 저녁

모든 그리운 것은 왜 뒤쪽에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은 

왜 가슴 속에 바스락 소리를 숨겨놓고 있는 것인지

써레질이 끝난 저녁하늘에서는 순한 노을이

방금 떠나온 뒤쪽을 몇 번이고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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