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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나희덕 본문

[ Mon Hobby ]/Poem

길 위에서 / 나희덕

JIHOON SON 2018. 1. 12. 21:18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바닥으로 문질러 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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