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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中 / 알베르 까뮈 본문

[ Mon Hobby ]/Passage

이방인 中 / 알베르 까뮈

JIHOON SON 2017. 9. 13. 14:57

-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


- 확실히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많이든 적게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소원한다. 여기서 변호사는 내 말을 끊었는데, 매우 흥분한 듯했다.


- 그럼에도 감금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해변으로 가서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발바닥 밑에서 일렁이던 첫 파도 소리,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 거기서 느꼈던 해방감을 떠올릴 때, 불현듯 내 감방 벽들이 얼마나 나를 압박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 달간만 지속되었다. 이후로 나는 수감자로서의 사고만 가지게 되었다.


- 나는 정말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은 바보 같은 충동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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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떠한 것에 대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독자를 사로잡곤 한다. 

까뮈의 <이방인> 속 문장들이 그렇다. 마치 뫼르소가 느낀 해변가의 햇빛처럼, 까뮈의 표현들은 내 머릿속에 파고들어 강렬하게 작열하는 듯했다. 


 뫼르소의 살인에는 생존본능,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첫 총발은 분명히 정당방위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소설 속 뫼르소는 ‘이방인’이었다. 

 그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바로 그가 남들에게 이방인이란 점이었다. 엄마의 시신을 앞에 두고도 밀크커피를 마시며 장례식장 수위와 대화를 나눴고, 레몽씨가 부인을 때리고 있는 순간에도 경찰관을 싫어했으며, 사랑스런 마리를 곁에 두고도 사랑하지 못했던 뫼르소. 매순간 허무와 공허감을 느끼고 사는 뫼르소는 남들에게 굉장히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그의 '이상함'은 그에 대한 어떠한 증언도 모두 묵살시켜버린다. 이방인으로서 그는 남들의 신뢰를 얻는 것에 실패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뫼르소의 사고방식과 삶에 대한 태도가 타인들과 달랐던 건 사실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그의 존재는 타인에겐 ‘틀린’ 존재로 인식되어버린 것이다.

 뫼르소가 이방인으로 인식된 순간부터, 타인 즉 세상은 모든 진실을 배제하고서 오직 선입견으로만 그를 왜곡한다. 그렇다고 해서 뫼르소가 평소에 매우 악덕하고 비열한 사람이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뫼르소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했고 자신 나름의 생각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고, 그랬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애정을 두지 않던 것이었다. 그는 그저 삶에 대한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지는 대로 사는,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았던 것 뿐이다. 그게 그저 보통 사람과는 달랐고 상식 속 예외였던 것뿐이다. 그것이 죄라면 죄가 된 것이다.

 나와 다르면 이방인, 나와 같다면 정상인.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것과 틀린 것. 정상이면 무죄, 비정상이면 유죄. 

이들 사이의 기준과 경계는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정상인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이방인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일까. 또한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어째서 죄가 되는 걸까. 까뮈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까지 비슷한 현실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기준’에 대한 논의는 인간존재에게 있어 만성문제인 듯하다. 소설 <이방인>에서 인간들이 재판한 건 뫼르소가 아니라, 뫼르소를 선입견 속에 가뒀던 그들 자신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비정상인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뫼르소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뫼르소가 죽으면서 느꼈던 그 행복이, 마지막 순간에 느꼈다던 그 평온함이 나를 너무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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